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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181018 [여순사건 70주년] “부당한 정권에 대한 저항… 여순사건 아닌 여순항쟁으로 불러야”

"여순항쟁 기록전"서 만난 주철희 박사

14연대, 남로당 결정없이 우발적 봉기  
수도점령 같은 목표 없어… ‘반란’ 아냐

주철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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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희 박사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여순사건’은 관점에 따라 ‘반란’, ‘폭동’, 사건’, ‘봉기’, ‘항쟁’ 등으로 정의된다. 여순사건을 오래 연구해 온 주철희(53) 박사는 “여순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주 박사를 ‘여순항쟁 기록전’이 열리는 여수 노마드갤러리에서 지난 15일 만났다. 

→여순사건을 ‘반란’이나 ‘폭동’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군인이 출동 명령을 거부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이범석 국무총리는 “극좌와 극우가 공모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 반란”이라고 했다. 그런데 군인 반란에 대한 책임은 군 최고통수권자가 진다. 그래서 송욱 여수여중학교장을 내세워 “좌익분자인 민간인이 반란했고 일부 군인이 참여했다”고 수정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광주 출신 하사관인 지창수가 등장하면서 남로당과 연관된다.

→남로당의 지령을 받고 움직여서 ‘반란’인가. 

-박정희 정권은 ‘남로당 지령을 받은 반란’이라고 규정했고, 여순과 북한을 연결시켰다. 하지만 14연대의 봉기는 남로당의 결정 없이 부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수도 점령과 같은 목표가 없었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있어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복합적이지 않은 역사는 없다. 프랑스대혁명은 삼부회의에서 루이 16세 처형까지 3년 넘게 걸렸고 동학농민운동도 2차 봉기까지 이어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계엄령 확대 조치, 전남대 발포, 학살 등으로 복합적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모두 ‘사건’으로만 볼 수 있나. 

→‘항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을 정지시키는 항쟁은 폭력을 수반한다. 동학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아전과 포졸을 죽였다. 경찰이 죽은 것 때문에 ‘항쟁’으로 못 부른다면 동학, 프랑스혁명도 대학살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군인들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14연대 군인들은 ‘동족을 살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 이후 여수 지역 민중들이 인민위원회를 건설하는 등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 피폐한 사회, 경제적인 상황 등에 저항했다. 14연대만 봉기했다면 ‘14연대 항명’으로 끝났을 것이다.

여수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onebyone.gif?action_id=abb784dd3c3a2d4a206a444dc99dc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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