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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 - 다원예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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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18-05-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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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

장지영(국민일보)

지난 5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축제가 첫선을 보였다. 모다페MODAFE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국제현대무용제의 프로그래밍 디렉터였던 김성희와 선재아트센터 학예실장을 역임한 김성원이 예술감독을 맡은 이 축제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다원예술축제를 표방해 축제 이전부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원예술은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21세기 예술의 비전으로서 최근 우리 문화예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할 때 9개의 소위원회 중 하나로 다원예술소위원회를 출범시킨데서 알 수 있듯 다원예술은 새로운 예술로서 연극, 음악, 미술, 무용 등 기존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도대체 무엇을 다원예술이라고 하는가?

이번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에 선보인 작품들을 보면 다원예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개막작인 윌리엄 포사이스의 흩어진 군중들을 보자. 현대발레의 거장인 윌리엄 포사이스의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용계는 물론 공연 애호가들 사이에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로댕갤러리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은 무용수 없이 6000여 개의 반투명 또는 불투명의 풍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어서 대부분의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갤러리 안을 걸어다니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풍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자리를 바꾸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매우 유동적이고 즉흥적인 이 작품은 기존의 무용에서 보던 안무가와 무용수, 관객의 위치를 뒤바꿔 놓는다. 즉 안무는 자의든 타의든 관객들의 몫이 되고, 풍선은 무용수가 된 셈이다. 게다가 풍선뿐 아니라 관객까지 포함해 하나의 입체적인 설치미술Installation이 된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티앙 리쪼의 100% 폴리에스테르, 춤추는 오브제 No.40또한 무용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무용수가 출연하지 않는다. 무대에는 가늘고 긴 줄에 두 벌의 원피스가 소매부분이 묶인 채 걸려 있는데, 바닥에 놓인 선풍기의 바람에 따라 사운드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인다. 조명 때문에 이 원피스는 마치 한 쌍의 커플이 춤을 추는듯한 최면효과를 관객에게 일으킨다. 설치미술이면서도 동시에 춤추는 행위라는 공연성을 획득한 무용 작품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대신에 브루스와 댄을 춤추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를 하시오라는 긴 제목을 가진 티노 세갈의 작품은 미술관 관람 시간에 맞춰 무용수들이 1명씩 번갈아가면서 미술관 안에서 동작을 취한다. 이 동작들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국내 호암아트홀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던 브루스 나우먼의 <-바닥 위치들>, 1968과 역시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개념미술가인 댄 그레이엄의 <구르기>, 1960라는 비디오 작업에서 보여지는 동작들을 새롭게 무대화한 것이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세갈은 비디오라는 물질적 매체로 남은 퍼포먼스를 순간적이고 비물질적인 공연의 퍼포먼스로 치환시킨다. 이 작품은 티노 세갈을 대신해 현대무용계의 악동 제롬 벨이 작품의 컬렉터로서 이번 페스티벌에 참석해 직접 퍼포머들을 선발하고 리허설을 지휘했는데, 이것은 기존의 미술 작품과 컬렉터의 관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컬렉터가 어떤 작품을 수집하든 그 작품의 속성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세갈의 작품을 소장한 제롬 벨은 이 작품의 속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또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극 헤이 걸은 서사가 아닌 찰나의 이미지를 통해서 작품을 이끌어간다. 이 작품은 연극이되 관객이 읽어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관객은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보는 것처럼 각각의 이미지를 봤다가 다시 버려야 한다. 이외에도 무대설치예술가 나디아 로로의 <소리를 듣다>는 관객과 무대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살아있는 공간을 만드는가 하면 지난해 토털시어터 앨리스로 화제를 모았던 홍성민은 오페라의 요령이란 작품을 통해 공연장의 통례적인 역할을 전복하는 등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참가작들은 하나같이 기존의 장르로 설명할 수 없다.

다원예술에 대해 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소위원회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예술창작활동다양한 예술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활동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다원多元의 사전적 의미가 요소나 근원이 여러 갈래, 또는 많은 근원을 뜻하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 다원예술은 각각의 장르들 모두와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다원예술이란 용어로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복합장르 또는 혼합장르라는 용어로 많이 쓰였다. ‘아비뇽 페스티벌등 해외 공연예술 페스티벌에 가 보면 이런 종류의 작품에 대해 연극 + 음악 + 무용이라고 동시에 표기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영어로‘Interdisciplinary Arts(Inter-Arts)’‘Multidisciplinary Arts’로 번역되는데서 알 수 있듯 다원예술은 장르간 융합이라는 속성을 강하고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예술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크로스오버가 여러 장르를 섞되 각각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다원예술은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참가작처럼 각각의 특성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르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얀 파브르의 눈물의 역사나 올해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얀 라우어스의 이사벨라의 방도 다원예술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르 구별이 엄격한 한국에서는 두 작품이 현대무용으로만 소개됐지만 해외에선 현대무용을 주축으로 한 다원예술로 본다. 벨기에 출신의 두 아티스트는 시각예술에서 출발해 무용까지 영역을 확장한 인물로 신체의 움직임이 핵심인 춤에 강력한 이미지와 연극성을 도입, 무용의 범주를 한층 확장시켰다.

한편 다원예술은 예술의 새로운 표현양식으로서 형식적 실험이라는 특성과 함께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의 다문화주의, 사회적 실천 등을 포함하는 가치적 양상의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다원예술이 각각의 전통적인 장르들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기 보다는 1990년대 예술계 혹은 장르예술과의 관계에서 비주류적 위치에 놓여 있는 대안적 예술활동, 독립예술(인디문화), 비상업적 대중문화, 소수자 문화 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쪽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게다가 정부의 기금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예술의 속성상 타 예술장르가 반영하기 어려운 사업들을 다원예술 분야에 모두 포함시키고 있어서 그 대상이 모호하다.

_ 장지영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출처] 새로운 예술 - 다원예술이란 무엇인가?|작성자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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