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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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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34회 작성일 18-06-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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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이후 한국의 역사는 서양의 근대를 수입 모방하면서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쳐 온 역사라 말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의해 일본 문화와 일본화된 서구 문화가 들어왔고, 해방 이후에는 주로 미국에 의해 근대적인 문화와 문물이 수입되었다. 일제 식민지 기간을 통해 근대적인 교육제도와 기술, 자본주의적 시장제도와 산업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또한 근대적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영화와 방송, 대중음악 등 매스미디어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들어왔고 이를 통해 서양식 대중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한국 대중의 문화적 감수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는 근대화의 과정을 왜곡시켰다. 식민지배는 무엇보다도 피식민지인들에게 자기 존중감과 자부심을 잃게 한다. 35년간의 식민지 체험은 한국인들에게 식민화된 의식을 남겨 놓았다. 자기비하와 열등감은 식민지 의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자기 부정의 의식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일제 식민지 체험은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서열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유교의 공식적 지위는 부정되었지만 기존 유교적 규범의 왜곡된 측면은 더욱 강화된 것이다. 일제는 억압적 관료체제를 갖추고 한국인들의 복종을 유도하기 위해 충(忠)과 효(孝)라는 유교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는 천황의 권위와 가족 단위의 호주권을 동일시하면서 호주에 대한 순종을 천황에 대한 복종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실시된 식민지 교육은 대체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교육 내용을 식민지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들이 만든 교과서에는 근대적 요소들과 함께 충효사상 등 유교적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1931년의 만주사변으로부터 시작해 1941년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천황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고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표어가 내걸리며 우리 말과 글을 없애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이 강화되었다.


일제강점기 근대적인 매스미디어가 도입되면서 특히 서울 등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서구화된 문화와 감성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는 서구식 패션이 유행하였으며, 유성기가 보급되었고, 영화 관객이 늘어났다. 다방과 카페, 댄스 홀 등 서구식 유흥과 오락이 등장했고 서구식 생활 양식을 추종하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1940년대부터는 전시체제가 본격화되고, 전체주의적 국가주의가 더욱 강화되면서 서구식 문화는 억압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한국의 문인, 언론인 등 친일 지식인들까지 나서서 젊은이들에게 천황을 수호하고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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