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의문화 > 라이브러리

갤러리노마드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현대 한국의문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94회 작성일 18-06-07 13:35

본문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의 미군정기와 1950년부터 3년간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문화 변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내세워졌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가치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시대를 거치며 지배적 가치로 작용해 온 유교적 가치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유교적인 충(忠)의 가치는 천황을 대신해 국가에 대한 충성이란 개념으로 바뀌었다.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대변하는 효(孝)의 가치 역시 여전히 강력한 가치로 작용했다. 남북 분단과 함께 충효의 이데올로기는 반공 이념과 결합하면서 국가의 수직적 권력 체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이런 양상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분단 체제 하에서 국가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충효사상과 결합한 반공이데올로기는 권력에 대한 모든 반대와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면서 권위주의와 획일주의, 가부장주의, 국가주의 등이 강화되었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사정없이 억압되었다.


20세기 전반기에 주로 일본 문화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 사회는 이제 미국을 통해 직수입된 서구 문화의 압도적 영향 속에서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 국가주의가 온존되고 강화되는 한편으로는 서구의 문물과 서구적인 소비 문화, 유흥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면서 커다란 가치관의 혼돈이 배태되었다. ‘자유부인’ 논쟁이나 ‘박인수 사건’ 등 전쟁이 끝난 1950년대 후반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었던 풍속 사건들은 바로 그런 혼돈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시작된 박정희 군사 정권은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근대화를 사회적 목표로 내세웠다. 군사 정권이 말하는 근대화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의 양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뿐 서구적 의미의 합리적 근대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충효사상을 통치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국민윤리라는 교과목이 생기고, 대학에 국민윤리학과가 설립되었으며, 초중고교 교육을 통해 반공과 충효라는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교육되었다. 1968년에는 일제의 ‘교육칙어’를 모방한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해 학생들이 암송하도록 강제했다. 매일 저녁 국기 하강식이 열리고, 영화관에서 애국가가 불려지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암송되는 등 체제 순종적인 ‘국민’을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들이 일상적으로 작동했다. 군사정권은 국민총화를 내세우며 국가 정책과 권력에 대한 일체의 저항과 갈등을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여 탄압하였다. 젊은이들의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당한 데서 보듯 시민들의 주체적인 권리나 사생활조차도 침해당했다. 연극, 영화, 가요, 소설 등 문화예술은 검열과 금지의 대상이 되었고 학문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유신체제의 몰락 이후 이어진 1980년대의 군사 정권 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1970, 1980년대 군사 정권 시대에는 대학과 종교계, 노동계 등을 중심으로 군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사회 운동은 정치, 경제적 민주화와 함께 인간 해방, 노동 해방, 민족 해방의 담론을 전개했고, 이러한 정신을 담은 다양한 문화가 생산되었다. 이런 저항적 하위문화는 대중매체를 비롯한 공식적 공간에서는 접근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권 문화, 혹은 민족문화, 민중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 출판 등 다양한 문화 장르와 진보적인 이념과 사회 의식, 역사관, 라이프 스타일 등 폭넓은 문화 영역을 아우르며, 당대의 젊은 지식인들과 진보적 노동자, 농민, 종교인 등에게 확산되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었고 그와 함께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에 빨려 들어갔다. 1990년대는 민주화와 함께 사회적, 문화적 자유의 폭이 크게 넓어졌고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대중매체가 급증하였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일상 문화가 크게 변화했다. 특히 영상 미디어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신세대 청소년 층을 주축으로 한 신세대 문화가 기성 세대의 문화와 충돌을 일으켰다.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신세대 문화는 기존의 정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와는 다른 욕망과 소비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신세대 문화의 등장과 함께 육체 문화, 소비 문화 담론이 크게 유행했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의 문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유교적 권위주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었고 과거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 사이의 갈등은 몇 차례의 정치적 변화와 연결되며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