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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국주의와 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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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35회 작성일 18-06-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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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에는 한국사회의 문화를 ‘민족문화’라는 차원에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당시의 문화 관련 담론에서 민족문화는 매우 모순적인 성격을 드러내었다. 당시 지배 권력과 저항세력이 모두 민족문화를 강조하였다. 유신 정권은 문화적 민족주의를 일종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이용하였고, 그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외래문화 수용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억압하였다. 1980년대에 전두환 군사정권은 ‘국풍81’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씨름 같은 민속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등 전통에 기반을 둔 민족문화 담론을 체제 정당화를 위해 확산시켰다. 그에 반해 1970, 1980년대의 저항세력은 또 다른 차원에서 민족문화를 주창했다. 그들에게 민족문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세력의 문화적 침탈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개혁하는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문화였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전통문화를 복제하고 복원하는 식의 ‘박제화된 민족문화’를 거부했다. 그 보다는 전통적인 문화의 형식과 정신을 계승하면서 분단과 반민주주의적인 당대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담고자 했다.


저항세력의 민족문화론에서 중요한 이론적 틀이 되어준 것이 문화제국주의론이다. 문화제국주의론은 1970년대 이래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제3세계 사이의 지배와 종속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졌던 종속이론의 틀을 문화 영역에 적용시킨 이론이다.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가 주변국가에 대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지배를 확대 강화해가는 현상을 제국주의라 하는데, 문화제국주의는 바로 그러한 제국주의적 현상의 문화적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영화나 TV 프로그램, 음악 같은 문화상품과 유행, 스타일 등이 지배국가로부터 종속국으로 전파되어 지배국가의 문화적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종속국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며 지배국가의 이익이 보장되는 수요와 소비 행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 민족문화론은 문화제국주의론 혹은 문화종속론의 이론적 전제를 받아들이면서 제도권의 대중문화를 문화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와 함께 반제국주의적 의식과 내용을 민족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해왔다.


1980년대 말부터 선진국 중심의 시장 개방 압력이 가중되고 그와 함께 문화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세계적으로 문화시장의 구도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문화산업이 팽창하면서 초국가적인 문화산업이 전지구를 시장으로 삼아 경쟁을 벌이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980년대부터 이루어진 일련의 탈규제정책과 시장 개방 정책은 문화산업의 영역에서 국가간 장벽을 사실상 철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전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문화시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선진국의 거대 자본이 전세계를 자유롭게 시장으로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의 자본이 미국에 들어가 영화사를 사서 영화사업을 벌이고, 미국의 자본이 영국에서 케이블TV사업을 벌이며, 초국가적인 음반자본들은 전세계에 지사를 설립하여 대중음악을 판매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1980년대부터 급속도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은 국제적인 문화 전파와 교류를 더욱 가속화시켰고,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국가간 문화 교류의 장벽을 결정적으로 사라지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문화시장 개방의 추세는 확대되었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정보화가 촉진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편입되게 된다. 이른바 ‘세계화’의 담론은 그와 같은 추세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문화제국주의론과 민족문화론은 더 이상 현실적인 대응 능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와 같이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그리 명료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문화의 정체성 자체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규정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문화제국주의적 상황 자체를 부정하거나 민족문화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적어도 민족문화를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된 전세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기술적 발전, 그리고 국제 관계에서 파생되는 지구화, 국제화, 세계화의 추세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한국 사회가 이미 오래전부터 빠르게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2007년 8월에 단기 체류 외국인과 장기 체류 등록 외국인을 합쳐 100만명을 돌파했고, 그 수는 점차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국제 결혼의 사례를 찾을 수 있고, 이주노동자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오래된 다인종, 다민족 국가에 비하면 그 비율이 결코 높지 않다고 해야겠지만,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국가의 신화 속에서 살아온 입장에서 보면 이런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문화사회라는 용어가 최근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좁은 의미의 민족문화 개념을 고수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대중은 더 이상 단일 민족, 단일 언어라는 울타리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 과거와 다른 민족문화의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다매체 다채널의 시대, 선진국 문화산업 자본의 거리낌 없는 유입과 다국적 문화상품의 범람,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이라는 현실 앞에서 고유의 전통문화만을 민족적인 문화로 간주하는 소박한 민족주의적 시각은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문화 [culture, 文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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