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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베버의 선택적친화성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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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갤러리노마드
댓글 0건 조회 1,073회 작성일 20-06-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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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맑스 사상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작업 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사회학 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였다. 베버 이전의 사회학자들은 대부분 사회를 구조로 파악하고 유기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베버는 사회라는 실재에 대한 분석을 지양하며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에 대한 학문이라고 규정하였다. 사회학이 사회적 행위를 분석하는 학문이라면 그 분석 단위는 자연스레 개개 행위자에 맞추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것의 표면적인 행동양식만을 보는 것이 아닌,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행위자들이 자신의 행위에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다.

 베버는 행위의 동기를 기준으로 사회적 행위를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목적과 수단이 모두 합리적으로 선택되는 의도적이고 목적지향적인 행위 2. 목적은 가치 지향적이지만 수단은 합리적인 가치합리적 행위 3. 목적과 수단 모두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행위자가 감정적 상태에 있는 감정적 행위 4. 사고의 일상적 습관에 의한 전통적 행위가 그 유형들로서 이러한 체계적인 구분은 역사발전과정 연구의 기반이 된다. 베버는 서구문명의 발전은 4가지 유형 중 목적합리적 행위가 다른 유형들을 대체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파악하였으며 이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 행위의 성격변화에 주목하고 해석단위를 구체적인 인간으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체적 인간과 그 행위의 동기에 주목하는 베버의 접근방식은 과도한 일반화를 추구하는 실증주의와 과도한 특수화를 추구하는 역사주의 사이의 제 3의 길을 추구한다. 인간의 개별 행위의 구체적 특수성 이면에 숨겨진 동기의 공통점을 찾음으로서 사회현상의 일반화가 가능해지며 또한 인간의 주관적인 동기에 대한 주목은 철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 인 법칙을 추구하는 실증주의에 대한 반박을 동시에 수행한다. 인간의 동기에 대한 추체험과 ‘이해’ 는 딜타이 류의 해석학에서 먼저 주장한 것이지만 이성에 반기를 들고 직관을 예찬한 이들과 달리 베버는 동기들의 합리성과 인과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베버는 자신의 방법론이 만능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어떠한 방법론이든 관점의 일면성(one-sided)은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이며 어떠한 이론도 현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베버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일면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받아들이며 이념형(Ideal type)이라는 방법론적 도구를 만든다. 이념형은 일면성이라는 한계를 방법론적 도구의 핵심으로 전환시킨, 일면을 강조함으로써 통합된 분석적 구성물을 구축하는 틀이다. 이념형의 요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요소에 기반하지만 본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 주변적 요소들은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념형에 들어맞는 집단이나 사상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이념형으로서 ‘개신교 윤리’를 구성할 수 있고 이것의 본질적 요소와 같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개신교 집단’ 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념적으로 구성된 개신교 윤리의 모든 부분과 일치하는 교리를 가진 집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념형은 사회현상이나 사건의 조건, 결과와 연결시켜 가설을 구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베버는 추상화 정도에 따라 이념형을 1. 서구도시나 현대 자본주의와 같은 역사적 특정성을 지닌 이념형 2. 관료제나 봉건제와 같은 다양한 맥락의 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이념형 3.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과 같은 특정 행위 유형의 이념형으로 분류하였으며 이 유형들은 가설을 설계할 때 문제를 다루어야 할 층위를 파악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베버는 사회과학을 연구함에 있어 연구주제 선택에는 가치가 개입되는 것이 필연적이지만 연구의 수행은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료가 말해주는 바가 자신의 사상적 신념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학자의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주문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개신교와 가톨릭 학교간의 기술교육 격차를 주장한 베버 본인에 대한 반박이 보여주듯 모든 자료는 그 해석에도 연구자의 신념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료가 단순한 경우에는 베버의 경구를 실행할 수 있겠지만(이 경우에도 자신의 신념 때문에 ‘자료 너머’를 탐구하는 동기가 부여되어 새로운 해석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데이터 처리 방법에 따라 같은 표본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오늘날의 복잡한 통계방법과 연구방법론 논쟁을 고려한다면 가치중립적인 연구방법 선택이 가능하다는 베버의 주장은 다소 순진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베버는 현대 사회의 주된 특징은 권력의 집중과 합리성의 증대로 보았으며 이러한 현대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 대표적인 조직의 유형으로 관료제를 뽑고 있다. 관료제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달식의 명령계통을 가진 위계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단계에서 일 처리는 서류에 기반을 두어 추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근대적인 관료제는 훈련된 전문성과 종신재직권, 임금과 구분되는 급료(조직 내 지위나 서열로 결정), 연금을 주요 특징으로 하며 특히 전근대적 관료제와 구분되는 지점은 급료이다. 전근대 시대에는 경제적 잉여가 부족하여 관료에게 조세권을 부여하였지만 산업화로 인해 관료제를 유지할 만한 경제적 잉여가 확보된 다음에는 국가의 생산수단 독점으로 인해 관료의 자율성이 국가에 철저히 종속되었다. 이러한 관료제는 단순한 효율성뿐만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개입하며 행정력, 군사력의 집중화를 수반한다.

 현대 사회의 합리화 과정에 기여한 것은 관료제뿐만이 아니다. 베버는 현대 사회의 변동에 대해 경제결정론을 뛰어넘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시도는 종교에 대한 연구이다. 비슷한 제반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발흥한 이유는 무엇인가. 베버는 이를 종교의 차이에서 찾음으로서 사상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규명한다. 베버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 층은 인문학 교육을 중시하고 비산업적 기업을 주로 운영하는 가톨릭 신자층에 비해 기술교육을 중요시하며 산업기업을 경영하는 신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차이는 금욕주의에서 기인한 경제적 합리주의로 나타나며 ‘소명(Calling)' 이라는 교리의 등장은 개인의 일상적, 세속적 활동을 신성화 해주었고 금욕주의는 고용자의 양심을 편하게 해주고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사실 칼뱅 본인은 예정설에 대해 선택 여부를 오로지 신의 은총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지만 일반 신도들은 선택 여부를 알기 바랬고 이 기준은 세속적 성공과 윤리 준수로서 신도들 스스로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종교개혁과 자본주의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낳았다기 보다는 각자가 자율적으로 그 맹아가 성장하다 “선택적 친화성” 에 의해 결합하여 근대적 합리성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베버의 동서양의 종교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근대적 합리성은 개신교만의 역할이 아닌, 고대 유대교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서구보다 발전된 형태의 관료조직을 갖추었던 중국 등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발흥하지 못한 이유는 마술에 의지하는 종교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함으로서 ‘마술의 정원’에서 탈출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대교는 합리적인 율법과 현세에의 계약이 그 교리의 근간을 이룸으로서, 그리고 예언자가 정치적 기능을 행함으로서 끊임없는 합리화 과정을 거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개신교로, 그리고 서구사회의 근대적 합리성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적 합리성의 증대는 사회의 분화를 낳는다. 베버는 맑스의 계급도식을 수용하였지만 자신의 시대에 맑스의 예상과는 달리 급격하게 성장한 중산층에 주목하여 생산수단에 따른 계급 분류 외에 교육, 훈련, 재산 등에 의해 분류되는 지위집단이라는 범주를 도입하였다. 맑스는 기본적으로 정치를 경제의 반영으로 보았으며 베버 역시 정치적 권력의 궁극적 표현은 경제적 권력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였지만 상부구조와 토대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상호성을 강조하였다. 즉, 권력의 원천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만이 아니라 재산과 교육 등의 부의 통제력이라는 점이며 행정적, 군사적 수단들도 생산수단 못지않게 권력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버는 앞에서 언급한 관료제의 확대에 따라 이러한 권력의 원천들의 집중화가 심화된다고 관측하였다.

 더 이상 관료에게 조세권은 주어지지 않으며 군인에게도 무기의 소유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소외’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본 맑스와는 달리 베버는 관료제에서 기인하는 비인간화를 자본주의보다 넓은 범주의, 근대 이후 사회의 본질적 요소로 보았으며 따라서 혁명을 통한 관료제의 전복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을 형식적 합리성에 종속시키며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는 관료제의 확대에 대해서 베버는 단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였는데, 이것은 베버와도 친교가 있는 맑스주의 미학자 루카치의 지적대로 오히려 전(前) 민주주의적인 시대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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